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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5-09-30 16:04 23 0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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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53. 어쩌다 정() 없는 사회가 되었을까

 

 

곧 추석입니다. 추석은 수확을 앞두고 그동안 함께 일한 것을 격려하고 함께 나누는 시간. 그런데 저는 며칠 전 신문기사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050원 간식 먹은 협력사 40대 직원, 회사 측 신고로 1심 벌금 5만원’. 절도 혐의가 적용된 간식값이 백만 원 십만 원 만원도 아닌, 커피 1잔 값도 안 되는 1050원이라니!


전북 완주군 물류회사 협력업체 직원인 김 씨가 지난해 118일 새벽 4시경 회사 사무실 냉장고에서 450원짜리 초코파이와 600원짜리 커스터드를 꺼내 먹었습니다. 이 사실이 회사 관계자의 신고로 드러나 절도 혐의로 기소되었고, 18개월에 이르는 길고 긴 송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김 씨는 평소 이 회사의 탁송 기사들이 냉장고에 간식이 있으니 먹어도 된다고 해서 먹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회사 측은 탁송 기사들도 냉장고를 함부로 열지 않고, 간식을 먹을 때는 사무직 직원의 허락을 받고 꺼내 간다며 김 씨의 행위는 명백한 절도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고, 검찰은 벌금 5만 원에 약식명령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김 씨가 이에 불복해서 정식 재판을 청구하자 1심 법원은 절도가 인정된다며 벌금 5만 원의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40대 초반 김 씨는 이 일로 회사에서 해고될 처지입니다.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재취업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김 씨는 벌금 5만 원을 내는 대신 수백 배인 1천만 원의 변호사 비용을 쓰며 무죄를 다투고 있습니다. 재판에선 CCTV 분석이 이뤄졌고 여러 직원이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해야 했습니다.


예전에 어른들은 내 집에 들어온 거지에게 줄 게 없으면 물 한 잔이라도 마시고 가게 했습니다. 또 조선 후기 문신 변종운은 허탕 친 도둑이라는 시에서 맨손으로 왔다 맨손으로 돌아가니 가난한 집주인이 부끄럽다고 표현합니다. 청나라 문인 정섭은 시 좀도둑에게에서 밤에 찾아온 도둑을 야단치지도 위협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문으로 나갈 테면 우리 개 놀라게 하지 말고, 담장을 넘을 거면 난초 화분을 조심하라고 당부합니다.


물론 최근에도 따뜻하고 훈훈한 얘기가 있습니다. 무더위에 고생하는 택배기사를 위해 문 앞에 음료수를 내놓거나 손편지로 인사말을 써놓은 고객. 산불진압과 가뭄 극복으로 고생하는 소방대원을 위해 커피와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카페와 식당 주인들. 그런데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직원에게 천 원짜리 간식 제공도 못 한단 말입니까? 회사 측에서 도난품의 회수나 변상을 원치 않고, 처벌을 원한다고 말했답니다. 양측 간에 누적된 갈등이나 불신 등 어떤 이유가 있는가 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사건과 연류된 기관들에게 질문을 해봅니다. 배가 출출한 새벽 시간에 과자 한두 개 꺼내 먹은 것이 형사처벌을 해야 할 일인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경고하는 것으로는 부족했을까? 경찰은 김 씨와 회사 측을 화해시킬 방법이 없었나? 검찰은 기소를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방법이 없었을까? 나아가서 1심 법원은 김 씨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야만 했을까?


빅토르 위고의 대표 소설 레미제라블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군요. 빵을 훔치다가 잡혀서 오랜 옥살이를 한 장발장. 그는 남을 원망하고 세상에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 장발장이 새 삶을 찾고 새로운 사람이 된 계기가 무엇이었던가요. 성당에서 은그릇을 훔친 장발장에게 훈계는커녕 은그릇과 은촛대까지 내어준 미리엘 주교.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주는 선물이라는 말에 감동해서 정말 새 사람으로 거듭난 장발장 아니던가요.


최근 항소심 공판에서 재판장을 맡은 김도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450원짜리 초코파이랑 600원짜리 카스타드를 가져가서 먹었다는 거다. 각박하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며 헛웃음을 보였다고 합니다. 다음 공판은 다음 달 30일 열립니다. 모쪼록 초코파이 포장지에 쓰여 있는 ()’이라는 의미가 되살아나는 솔로몬의 지혜처럼 현명한 판결을 기대합니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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