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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번도 없이 화개에서 쓰러진 소년들, 76년 만에 제대로 된 자리를 돌려드리자

2026-09-03 14:25 12 0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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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번도 없이 화개에서 쓰러진 소년들,

76년 만에 제대로 된 자리를 돌려드리자


산 위 추모공원을 아래로 옮기고 3·1운동기념비와 통합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화개 독립·호국역사공원을 만들자

 

김동욱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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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공원이 있는데 추모제를 열지 못한다

지난 7월 25일 제76주기 화개전투 전몰학도병 추모제가 열렸다. 그러나 장소는 정작 학도병 추모공원이 아니었다. 산 아래의 길 건너 화개면 궁도장이었다.

현재 추모공원이 산비탈 높은 곳에 있어 연세 많은 유족과 주민들이 올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추모공원이 있는데 그곳에서 추모제를 열지 못한다. 이 모순 하나만으로도 지금 화개의 호국시설을 왜 다시 생각해야 하는지는 충분하다.

1950년 7월, 어린 학생 183명이 나라를 지키겠다며 자원입대했다. 대부분 오늘날의 중·고등학생 또래였다. 군번도 없고 군사훈련조차 제대로 받아본 적 없던 소년들은 불과 9일가량의 훈련을 받은 뒤 화개전선으로 향했다.

7월 25일 아침, 북한군 제6사단 선봉부대가 화개로 밀려왔다. 전차와 중화기로 무장한 병력을 상대로 어린 학도병들은 소총을 들고 맞섰다. 현장 안내판에는 183명 가운데 70여 명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됐다고 기록돼 있다.

그들에게도 돌아갈 교실이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었고, 친구와 책상이 있었으며, 펼쳐놓고 나온 교과서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붙잡아 놓은 것은 화개의 산길 하나만이 아니었다.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키며 국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정비할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소년들은 자신의 미래를 내놓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킨 것이다.


군번도 이름도 없이 땅에 묻힌 소년들

전쟁은 죽음 뒤에도 잔인했다.

군번조차 받지 못한 학도병들이 있었고, 많은 전사자의 시신은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지역 주민들이 산야에 흩어진 시신을 수습해 묻어야 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많은 아이들의 이름과 행방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 남았다.

2007년에는 화개전투 현장에서 학도병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굴되기도 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화개의 흙 속에 누워 있던 어린 뼈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먹먹하다.

그들은 나라에 무엇을 요구한 적이 없다. 훈장을 달라고도, 보상을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나라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한 순간에 자신들의 목숨을 먼저 내놓았을 뿐이다.

우리가 오늘 자유롭게 말하고, 투표하고, 장사하고,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어느 날 저절로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조국을 지킨 이름 없는 수많은 젊은이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피 가운데 화개의 산에서 쓰러진 어린 학도병들의 피가 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을 모신 추모공원은 고령의 유족과 주민이 쉽게 올라갈 수도 없다. 좁은 산비탈의 추모시설과 낡은 안내판을 바라보면 과연 우리가 이 어린 영혼들에게 합당한 예를 다하고 있는지 부끄러워진다.

1950년에는 열다섯 살 소년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 산을 올랐다. 76년 뒤에는 그 소년들을 추모하러 온 노인들이 그 산을 오르지 못한다.

이 현실을 더 이상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1919년의 만세와 1950년의 총성을 한곳에 담자

화개가 품고 있는 역사는 학도병 전투만이 아니다.

1919년 4월 화개장터에서는 쌍계사 승려와 학생, 상인과 주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을 외쳤다. 이강률·이정수·이정철·임만규 등은 더 큰 만세시위를 준비하다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지금도 화개장터 인근에는 국가보훈부 현충시설인 ‘화개장터 3·1운동기념비’가 그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1919년에는 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렸고, 31년 뒤인 1950년에는 어린 학도병들의 총성이 울렸다.

시대는 달랐지만 지키고자 했던 것은 같았다.

나라였고 자유였다.

이 두 역사를 더 이상 서로 떨어진 작은 기념시설에 흩어놓을 이유가 없다.

현재 추모공원 아래 접근성이 좋은 곳에 3·1운동기념비와 학도병 추모시설을 함께 품은 ‘화개 독립·호국역사공원’을 조성하자.

화개전투와 전몰학도병의 숭고한 희생을 체계적으로 기리고,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추모 공간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전몰학도병들은 자신의 꿈과 미래를 뒤로한 채 조국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다. 그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소중한 역사이다.

이에 화개면 호국공원 일원에 「화개 호국공원 전몰학도병 추모공원」을 조성하여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학생과 군민의 역사교육 공간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훈·역사 문화 명소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추모공원에 전몰학도병 추모탑, 추모벽과 명비, 헌화광장, 화개전투 역사관, 호국역사 탐방로, 전망 쉼터, 주차장 및 편의시설 등을 조성하여 단순한 추모시설을 넘어 역사와 교육, 관광이 함께하는 복합 공간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화개 호국공원 전몰학도병 추모공원 조성사업’은 과거를 기리는 사업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나라 사랑과 공동체 정신을 전하는 가치 있는 투자이다.

노인도, 장애인도, 어린아이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위쪽의 기존 전투 현장은 없앨 필요가 없다. 실제 참호와 전적지는 역사 현장으로 보존하고, 아래의 새로운 공원과 탐방로로 연결한다면 추모와 역사교육을 함께 살릴 수 있다.


벚꽃과 녹차 너머 ‘자유를 지킨 화개’를 만들자

화개 하면 벚꽃과 녹차, 화개장터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화개에는 그것보다 더 깊은 이야기가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평범한 주민들이 독립을 외쳤고, 어린 학생들이 총을 들고 대한민국을 지킨 역사다.

새 호국공원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먼저 희생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진실한 역사는 그 자체로 사람을 불러들인다.

새 공원이 화개장터 가까이에 조성된다면 관광객들은 장터와 벚꽃만 보고 떠나지 않고 이곳에 들러 화개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공원 주차장은 평상시 화개장터 방문객도 함께 이용하도록 하면 관광객 주차난 해소와 시설 활용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거대한 건물을 짓는 토목사업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화려한 조형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학도병의 이름을 더 찾아내고, 유족과 주민의 증언을 기록하고, 유해발굴 자료와 전투기록을 제대로 보존하는 일이다. 국가보훈부와 경상남도의 지원을 적극 확보해 군비 부담도 줄여야 한다.

벚꽃은 봄이 지나면 진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흘린 피의 기억까지 져서는 안 된다.

군번도 없이,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화개의 산에서 쓰러진 어린 학도병들이 있었다. 그들의 희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서 있다.

이제 화개가 그들에게 제대로 된 자리를 돌려드릴 때다.

누구나 찾아와 꽃 한 송이를 놓고 머리를 숙일 수 있는 곳,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자유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배우는 곳을 만들자.

그리고 그곳에서 후세가 오래도록 말하게 하자.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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