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호정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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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은 지키라고 있지 74호

 규칙은 지키라고 있지   문방구 앞 두더지는 모가지가 없지모가지가 없어 슬프지 않지모가지가 없어 아프지 않지   어쩜 이토록 망치가 빠를 수 있지어쩜 비명이 경쾌할 수 있지   무얼 잘못한 건지 알 겨를도 없지곰곰 반성할…

하동타임즈 2026.09.03 15

가뭄 74호

 가뭄   물 빠진 자리가 궁금해 걸어 들어갔다캄캄한 뻘밭듬성듬성 허리 휜 수초가앓아누워 있고현생이 즐겁다고 너울너울춤추던 물고기 보이지 않는다속 텅 빈 우렁이 껍데기 몇 개허기진 소리로 울고물기 마른 갈증이 스쳐 가는 고요낮이면 햇살이 내려오고밤…

하동타임즈 2026.09.03 9

일진 73호

 일진   저마다 주검을 입에 물고멀리 날아가는 까마귀 떼   짙게 드리웠던 아침 안개가서서히 간밤의 일을 들추고 있다   길은 알았다는 듯이맨몸을 드러내며 검게 늘어져 있다   내가 본 광경은 나와는 무관한 …

하동타임즈 2026.08.24 47

멸국 73호

 멸국 밑동이 잘려나간 그루터기에어린묘목인 듯 곁가지가 돋아났다   시간이 시간을 추월하는 어긋난 공간   거대한 육신을 먹여 살리던 뿌리들은쟁기를 놓고 공장은 문을 닫고물 깃던 두레박은 말라가리라   잔뿌리 몇몇이 옛 영…

하동타임즈 2026.08.24 26

북국새 72호

 북국새   아무래도 실향민일 테다고향을 그리다 죽은 원혼일 테다분명 좌편향일 테다한번 싸워보지도 못한이 산 저 산 헤매다 굶어 죽은파르티잔일 테다누구도 부르지 못하는 이름으로죽어서도 땅 한 뼘 얻지 못한어린 소년이 어여쁜 소녀가 한 많은 여인이늙…

하동타임즈 2026.08.11 36

유기견 72호

 유기견   바닷가에서 묻어온 모래가밤새 서걱 이고 있다   파도소리 버리고인간의 발바닥에 매달려 온 먼 여행어젯밤 오들 거리던 서리는 벗어났지만내방 한켠에서 숨을 허덕거리고 있다   작은 호숫가에서태평양 파도 바람도 잊은…

하동타임즈 2026.08.11 37

저녁 풍경 71호

 저녁 풍경   개미 한 마리가제법 쌀쌀해진 바람을 타고제 몸보다 큰 나비를 데리고 갑니다먹고 사는 일이 온통 바닥을 기는 일인데오늘 밤 저 개미는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꿈을 꾸겠습니다   달력의 마지막 숫자가 여름을 거두는 저녁길목마다…

하동타임즈 2026.07.21 50

건어물 71호

 건어물   더 이상 오를 수 없다바다생명이 살 수 없는 한계선   파도가 모래톱을 기어오르다 무너지고푸른 나뭇가지에 매달리다 주저앉는벼랑   멸치랑 고래는은하의 이쪽 미지의 생명에게말을 걸고 싶었겠지봄이면 아까시꽃 향기 …

하동타임즈 2026.07.21 51

낚시 70호

 낚시   으스름 저녁이 와서요사방에서 도란거리는 소리가 나서요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요전화 소리 문자 소리 고양이 소리 개 짖는 소리소리에 딸려 나온 초승달이 보일 듯 말 듯 걸려 있어서요장난삼아 별 하나를 걸어 바다에 던져보는 …

하동타임즈 2026.07.07 57

패러글라이딩 70호

패러글라이딩   새의 날개를 빌려 허공을 걸어보자고무작정 날아오를 수 없어날갯짓 대가를 발품으로 지불하는 등반뼛속 공기를 채우지 못한 무거운 육신은연어가 여울목 거슬러 오르는 걸음보다 더디게언덕을 올라허공을 자맥질 한다지상을 버리고 헤집는 날갯짓중력 잃은 …

하동타임즈 2026.07.07 58

파랑 69호

 파랑   입술부터 파랗게 물들이는 말이 있어파란 새파란 푸른 짙푸른 퍼런 시퍼런이런 빛깔은 어두울수록 생생하게 피어나비스듬히 넘어가던 말도 일제히 솟구치게 하거나그 힘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서시도레미 도시라솔 파가 없으면 노래는바람 빠진 타이어거나 …

하동타임즈 2026.06.30 66

하와이 연가 69호

 하와이 연가   파도 하나쯤가슴속에 감추고 살아도 괜찮겠지난바다가 넘실거리는천 길 물속이 무섭겠지마는   그 속에도고래도 있고 새우도 있고 집 한 채 지고 다니는조개도 있지 않겠나   사탕수수밭에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지잿…

하동타임즈 2026.06.30 64

귀가 68호

 귀가   비 내리는 밤길을 달린다앞서가는 차도 뒤따르는 차도 없다앞서거니 뒤서거니 추근대던 달도 없다길은 젖어 번들거린다검은 뱀 같다뱀은 마을을 삼키고 산모퉁이를 삼키고나를 삼키고 구불구불 간다출구가 보이지 않는 길을 간다저승으로 가는 길이 이럴…

하동타임즈 2026.06.09 103

비린 소나기 68호

 비린 소나기   마른 물고기가 헤엄친다물고기보다 황새다리가 더 깊어지는 가뭄깊이란 깊이는 다 소멸되고 어두워부레를 내려놓고지느러미 내려놓고 비늘도 벗어놓고   먹구름 타고 비를 뿌린다잃어버린 과거로부터너무나 흔해서 흘러 보낸하늘저수지…

하동타임즈 2026.06.09 108

고라니 67호

고라니   적막한 산길에서 우연히 만난고라니가 묻는다왜에 ― 왜에 ―먼지같이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핏대를 세워서 묻는다가늘고 긴 다리를 짱짱하게 세우고 묻는다나는 답을 할 수가 없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고라니가 떠밀려간다왜에 ― 왜에 ―물음이…

하동타임즈 2026.05.19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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