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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6-09-03 14:46 13 0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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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74. 인간적인 아날로그, ‘날것의 미학

 

 

요즘은 스마트폰 렌즈를 들이대면 기계가 알아서 흔들림을 잡고 노출을 계산해 피부 톤까지 뽀얗게 만들어줍니다. 셔터만 누르면 누구나 흠잡을 데 없는 사진을 얻습니다. AI의 등장으로 단 몇 초만에 완벽한 영상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대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명하고 깨끗한 사진은 더 이상 남다른 감각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하면 이거 혹시 AI가 만든 거 아냐?” 하는 의심부터 받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구형 카메라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사물, 기름기로 번진 불빛, 흐트러진 채 웃는 모습 등 과거에 망한 사진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더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연스럽고, 순간의 분위기를 포착한 것들이 진짜로 있었던 일이고, 사람이 직접 찍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또한 AI가 음악을 연주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AI는 악보를 정확히 읽고, 박자도 흔들림이 없고, 연주자의 감정까지 계산해서 재현합니다. 인간보다 더 안정적이고 실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실제 연주를 듣기 위해서 공연장을 찾을까요?


조금씩 달라지는 호흡, 미묘하게 흔들리는 음색, 그리고 연주자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이런 것들이 같은 곡을 연주해도 날마다 다른 느낌을 줍니다. 특히 연주자가 어떤 음 앞에서 잠시 속도를 늦출 때, 인간의 개입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을 루바토(rubato)’라고 하는데, ‘훔치다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루바레(rubare)’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루바토는 가수가 노래할 때 감정을 싣기 위해서 어떤 단어를 조금 더 끌거나, 다음 구절을 살짝 늦게 시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연주자는 이렇게 시간을 밀고 당기며 음악의 감정이 얼마나 깊어질지 결정합니다.


물론 AI도 특정 연주자의 데이터를 학습해서 어느 때 얼마나 늦추고 어디서 다시 속도를 올려야 하는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의 루바토는 이미 정해진 시간이므로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날의 컨디션과 악기를 마주하는 순간, 객석의 분위기 등이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같은 연주자의 같은 곡이라도 루바토는 매번 다릅니다. 즉 인간의 직접 연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미세한 흔들림과 망설임, 그것이 깊은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패션계를 한번 살펴볼까요? 얼룩과 주름, 해진 흔적처럼 한때는 감춰야 할 결점으로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가장 솔직한 스타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더티코어(dirty core)’라고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밴 지저분한 차림의 옷들이 기존의 정돈된 이미지에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최근 프라다의 컬렉션을 보면, 얼룩진 셔츠 소매와 흙먼지가 내려앉은 싯누런 코트 자락, 갈기갈기 뜯긴 스커트 밑단이 등장합니다. 샤넬 역시 전통적인 고급 코드에서 한 발짝 물러섰습니다. 소매와 밑단의 올을 일부러 풀어낸 코트와 너덜너덜한 소매. 게다가 값비싼 명품 샤넬 백을 소중하게 들기보다 아무렇지 않게 움켜쥔 모습이라니!


패션의 역사를 돌아보면, 경기 침체나 정치적 혼란 같은 불확실한 시기에는 어딘가 흐트러진 미학이 등장했습니다. 그 속에 기존 질서와 관습을 거부하려는 반항적인 태도가 깔려 있습니다. 1970년대 정치사회적 불안 속에서 등장한 펑크 패션은 찢어진 티셔츠와 헝클어진 머리 등 의도적으로 망가뜨린 스타일로 저항했습니다. 1990년대 경기 침체기에는 오래된 체크 셔츠와 해진 데님 바지, 오토바이를 타며 입는 가죽 재킷이 젊은이들에게 유행이었습니다.


지금 디지털 시대에는 우리가 얼마나 인간적인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AI 시대의 디자이너들은 인간적인 흔적과 실수, 불완전함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래라면 감춰야 할 얼룩과 주름, 낡고 해진 흔적들을 전면으로 끌어내어 AI의 알고리즘으로는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현실감과 진정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불완전하고, 아날로그적이며, 삶의 흔적이 담긴 것들에 대한 표현은 이어질 것입니다. 이제는 조금 흔들려야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됐습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흔들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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