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가는 섬, 채워지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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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가는 섬, 채워지는 희망
‘섬 거주수당’이 가져올 해양 영토의 미래
이정걸 하동군 해양수산과장
“섬에 살면 좋겠습니다.” 육지 사람에게 물으면 대개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아침에는 파도 소리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열면 바다가 펼쳐지고, 저녁에는 낙조를 바라보는 삶.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
하지만 한 달만 살아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병원에 가려 해도 배 시간을 확인해야 하고, 장을 보거나 행정업무를 보려 해도 배를 타야 한다. 생필품에는 운송비가 붙고 날씨가 나쁘면 배마저 뜨지 않는다. 섬은 관광객에게는 낭만이지만 주민에게는 매일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다.
그 현실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전국 480개 유인도서의 인구는 최근 6년간 약 4.8% 감소했고, 소규모 유인섬의 고령화율은 48.8%에 달한다.
우리 하동의 유일한 유인도인 금남면 대도(大島)도 마찬가지다. 2016년 142명이던 인구가 2026년 120명으로 줄었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을을 지탱할 20~64세 생산가능인구가 77명에서 40명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반면 65세 이상은 전체 주민의 60.83%, 75세 이상도 30%에 이른다.
이쯤 되면 대도의 가장 귀한 자원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복도, 굴도, 멸치도 아니다. 사람이다.
섬에서 젊은 사람 한 명은 주민등록 인구 ‘+1’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어르신이 아플 때 도와줄 사람이고, 마을 행사를 함께할 사람이며, 태풍이 오면 배와 시설물을 살필 사람이다. 아이까지 함께 온다면 마을에는 웃음소리가 하나 더 생긴다.
하지만 사람은 애국심만으로 살 수 없다. “대한민국의 해양 영토를 지켜주십시오”라는 말에 주민들은 “그럼 배삯은 누가 냅니까?”라고 되물을 수 있다. 병원도 배, 장보기도 배, 행정업무도 배다. 택배에는 추가 배송비까지 붙는다. 섬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 ‘섬세(稅)’를 부담하는 셈이다.
이런 불편은 결국 사람을 떠나게 한다. 사람이 줄면 배 이용객이 줄고 교통과 생활서비스가 위축된다. 살기가 어려워지면 다시 사람이 떠난다. ‘사람이 줄어 배가 줄고, 배가 줄어 사람이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방파제를 만들고 선착장을 고치고 도로를 냈다. 모두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방파제가 병원 갈 배삯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사람이 떠난 뒤에는 잘 만들어진 선착장도 의미를 잃는다. 이제 섬 정책은 ‘시설을 만드는 정책’에서 ‘사람이 계속 살 수 있게 하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섬 거주수당’이다. 하동군이 섬지역기초단체장협의회 등을 통해 건의하고 있는 섬 거주수당은 주민들이 감당하는 생활 불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월 10만~15만 원을 지원하자는 제도다.
“섬에 산다고 돈까지 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용돈도 시혜도 아니다. 보전(補塡)이다. 육지 주민이라면 부담하지 않아도 될 교통비와 물류비 등 추가 비용을 국가와 사회가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물론 이 수당 하나로 당장 청년들이 대도로 몰려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섬에 사는 당신의 불편과 희생을 국가가 알고 함께 부담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는 줄 수 있다.
유인도는 단순히 바다 위에 떠 있는 땅이 아니다. 사람이 살고 불을 밝히는 섬은 우리의 해양 영토를 지키는 살아 있는 전초기지다. 무인도가 된 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보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따라서 섬 거주수당을 지방정부의 재정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국가 균형발전과 해양 영토 보전 차원에서 국가가 함께 책임지고 국비 70%, 지방비 30% 등 안정적인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의료·교통·주거·일자리 정책도 함께 가야 한다.
대도의 생산가능인구는 이제 40명이다. 이 숫자가 20명, 다시 10명이 되는 데 또 10년이 걸린다는 보장은 없다. 마지막 사람이 떠난 뒤 “조금만 더 일찍 할 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정책에서 가장 비싼 말은 ‘그때 할 걸’이다.
섬의 희망은 거창하지 않다. 오늘 밤에도 누군가의 집에 불이 켜지고 내일 아침에도 그 사람이 섬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렇게 사람이 살아야 바다와 우리의 영토도 살아 있다. 대도의 불빛이 오래도록 꺼지지 않도록, 이제 국가와 지방정부가 함께 그 불빛을 지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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